지역탐방/의령군

의령투어 / 2025.2.2. / 산타루치아 산행이야기

특별산행 2025. 3. 3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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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투어

솥바위, 호암 이병철 생가, 의병공원, 출렁다리, 일붕사, 봉황대

 

 

탐방기록

○ 일시 : 2025.2.2.(일) 09:00 ~ 12:00

○ 장소 : 의령 솥바위, 호암 이병철 생가, 의병공원, 일붕사

○ 참석 : 1인

○ 높이 : 일붕사 50m

○ 거리 : 2.0km

○ 시간 : 3시간 / 이동시간 2.5시간

○ 코스 : 의령솥바위, 의병박물관, 출렁다리, 호암 이병철 생가, 일붕사

○ 배지 : -

○ 특이사항 : 솥바위, 이병철 생가 등 부자마을 방문

 

<의령군>

경상남도의 중앙부, 경도상으로는 동경 128° 07′~128° 26′, 위도상으로는 북위 35° 15′~35° 31′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창녕군과 마주하고, 동남쪽으로 남강을 사이에 두고 함안군과 마주하며, 서쪽으로 산청군, 남서쪽으로 진주시, 북쪽으로 합천군과 접한다. 면적은 482.91㎢로 경남 전체 면적의 4.6%를 차지하여 도내 18개 시·군 가운데 12번째에 해당하며, 행정구역은 1읍 12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는 2023년을 기준하여 2만 6359명으로 경남 전체 인구의 0.8%에 그쳐 18개 시·군 가운데 가장 적다.

군을 상징하는 꽃은 진달래, 나무는 은행나무, 새는 비둘기이다. 군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는 의령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하는 데 공헌한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郭再祐)를 모티브로 하여 군내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판단하여 처리하는 해결사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홍의장군'이다. 군청 소재지는 의령읍 중동리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의령군 [Uiryeong-gun, 宜寧郡]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의령 솥바위

<정암(鼎巖)>

의령의 남강(南江)에 있는 바위섬으로, 바위의 형상이 가마솥을 닮아 ‘솥 정(鼎)’자를 써서 정암(鼎巖)이라 부른다. 솥바위라고도 한다. ‘정(鼎)’이란 원래 ‘다리 달린 솥’을 말하는데, 물에 잠겨 있는 부분은 솥의 발처럼 3개의 발이 달려 있는 형상이라 한다. 정암을 중심으로 반경 8km 이내에는 부귀가 끊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구전되어 내려온다.
주변의 강가는 정암진(鼎巖津)이라는 나루터였는데 이곳은 임진왜란  곽재우 장군이 이끄는 의병이 곡창지대인 전라도 침탈을 위해 전라도로 통하는 길목인 의령으로 진격한 왜병을 섬멸시킨 전적지(정암진전투 승첩지)이기도 하다.
정암 옆으로는 남강을 가로지르는 철교(정암교)가 놓여 있으며, 강가 언덕에는 1935년 세운 정암루(鼎巖樓)가 서 있다. 또, 인근에 곽재우장군 동상과 2005년 완공한 의령관문(길이 45.17m, 높이 12.87m)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암 [鼎巖]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솥바위 전설

솥바위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어느 날 솥바위를 지나는 도사가 솥바위를 중심으로 반경 20리 안에 대한민국의 부를 이끌 인물의 탄생을 예언했다고 한다. 이후 삼성·엘지·효성그룹의 창업주가 출생하여 솥바위의 전설은 현실이 됐다. 남강에 박혀 있는 솥바위가 어떤 연유로 거부(巨富)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바위가 됐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생기를 발산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반경 20리안에 큰 부자가 난다고 전하는데 실제로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LG창업주 구인회, 효성 창업주 조홍제가 출생했다고

 

홍의장군 기념탑

<홍의장군 곽재우>

1552년 의령군 유곡면 세우리에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한 곽재우가 태어났다. 곽재우는 그의 스승이자 영남 유학의 거봉인 남명 조식의 외손녀와 혼인하고 35세 때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채 고향에 돌아와 지냈다. 40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집안의 하인 열세 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집 느티나무에 북을 매달고 치면서 본격적으로 의병을 모았고, 그해 6월 말에는 정암나루 부근 솟대바위에서 왜군과 맞서 싸워 크게 이겼다. 곽재우는 항상 붉은 옷을 입고 싸움에 임했으므로 홍의장군이라고 불렸다.

임진왜란 때 세운 공을 인정받아 경상좌방어사로 재직하던 곽재우는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창녕의 화왕산성에서 왜구와 맞섰고 그 싸움에서 왜군 수천 명을 무찔렀다. 난이 끝난 뒤에 당쟁에 휘말린 조정에 상소를 올려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잡으려 애썼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그 후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지만 곽재우는 “고양이는 쥐만 잡으면 할 일이 없다”라며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로 돌아와 지내다가 숨을 거두었다.
남강변에 자리했던 아름다운 정암나루에 뱃노래 한 토막이 남아 있다.

 

정암 사공아 뱃머리를 돌려라

우리 임 오시는데 마중 갈까나

아리고데고...... 성화가 났네

[네이버 지식백과] 의령에서 태어난 곽재우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3 : 경상도, 2012. 10. 5., 신정일)

 

의병기념탑

 

의병박물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郭再祐, 1552~1617)를 필두로 전국 최초로 의병이 궐기했던 의령에 의병의 날인 2012년 6월 1일 설립되었다. 1993년 4월 21일 개관해 의령군민문화회관 내에 자리 잡고 있던 의령박물관과 곽재우와 휘하 장병들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인 충익사(忠翼祠) 기념관을 합병하여 의병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현재 위치에 건물을 신축해 재개관했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건축 총면적 2,745㎡, 부지면적 9,537㎡의 규모이며, 고고, 민속, 의병 관련 유물 등 800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의병박물관 [Uibyeong Museum, 義兵博物館]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하천에는 제를 지내고 있네요

 

출렁다리 가는길

 

우리나라 최초의 Y자형 출렁다리가 아닐런지

<의령 구름다리>

의령군이 사업비 48억 3,000만 원을 투여하여 2002년 8월 착공하고, 2005년 12월 22일 준공한 구름다리로, 의령천 종합휴양지 조성사업의 하나로 건립되었다. 자굴산에서 발원하는 의령천과 벽화산에서 발원하는 남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우뚝 세워져 있다. 의령구름다리는 복합형 사장교(斜張橋) 형식의 Y자형 다리로, 중앙에 높이 세운 주탑으로부터 42개의 케이블(쇠줄)을 드리워 다리를 지탱하는 구조이다.
총연장은 255m(사장교부 135m, 출렁다리부 120m), 주탑 높이는 45m, 다리 높이는 19m에 이른다. 다리 가운데 부분의 바닥판은 성긴 철망으로 만들어져 있고 철제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또 각 방향 다리 끝 부분은 걸으면 다리가 출렁거리는 일명 출렁다리(흔들다리)로 바닥판은 나무, 난간은 케이블(줄)로 되어 있어 아찔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다리 폭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이다.
구름다리는 세 방향 즉 의령천 수변공원과 휴게쉼터,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다. 산 속 산책로 쪽으로 가면 인공폭포가 조성되어 있고, 수변공원 쪽으로 가면 잘 정비된 하천둔치와 자연풀장이 나온다. 구름다리 주탑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주탑 아래쪽 강물 속에는 여러 형태로 모양을 바꾸는 분수가 설치되어 있다. 밤에는 주탑을 향해 15개의 조명을 쏘아 야경 또한 일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의령구름다리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호암 이병철생가 가는길

 

생가입니다

<호암 이병철 생가>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는 삼성그룹의 창업자이자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끈 대표적 기업가인 호암 이병철이 태어난 집이다. 1851년 호암의 조부가 대지 면적 1,907㎡에 전통 한옥 양식으로 손수 지었으며, 호암 선생이 유년 시절부터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의 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다. 일자형 평면 형태로 지어진 생가는 남서향의 평평한 땅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동안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쳐 은은하고 고고한 멋을 풍기는 오늘의 모습으로 단장되었다. 생가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담한 토담과 바위벽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구분되고, 주위로는 울창한 대숲이 조성되어 운치 있는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놓은 것 같은 노적봉 형상을 하고 있고, 주변 산의 기가 산 끝자락인 생가의 터에 혈이 되어 맺혀 있어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의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를 이루고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 호암 이병철 호암 이병철 선생은 1910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났다.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한 이래 삼성전자를 비롯한 많은 기업을 일으켜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였으며, 1961년에는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경련)를 발의하고 초대 회장에 추대되었다. 1965년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우리의 정신적 자산을 풍족하게 하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였고, 1980년대에는 특유의 통찰력과 선견지명으로 반도체산업에 진출하여 우리나라 첨단산업의 발전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호암 선생은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불모의 한국경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가 경제 발전을 선도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암 이병철선생 생가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해설사분의 해설도 듣고

 

부자바위인데 밭전자가 많이 쓰여있다고

재물의 기가 서린 바위벼랑 ~ 호암 선생 생가의 뒷산 낙맥에 이집 터의 부귀의 기가 잔뜩 서려 있다고  한다. 안내원이 가리키는 바위 벼랑에는 낱가리, 한문의 밭 田자 모양, 박쥐모양, 부엉이 모양 등 부귀와 재물을 나타 내는 각종 문양이나 글자 동물의 모양이 바위벽에 자연적으로 생겨나 있어 범상치 않은 부귀 영화의 터가 된다는 것이다.

 

일붕사에 도착

<일붕사>

일붕사는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영국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는 사찰이다. 천혜의 자연 요건을 갖춘 봉황산에 위치해 있으며, 합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727년 신라 성덕왕 26년에 혜초 스님이 중국과 인도의 성지를 순례하고 돌아오던 중 꼼에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절벽에서 지장보살님이 환하게 웃으며 이곳에 호국영령들을 위로해 줄 불사를 하면 훗날 큰 보배가 될 것이라 듣게 된다. 스님은 귀국하는 길로 성덕왕께 말씀드리고 전국의 명산을 헤매다가 꿈에서 본 기암절벽과 모습이 흡사한 봉황산에 사찰을 건립하였다. 당시 성덕왕의 이름을 따 성덕사라고 하던 것이 현재 일붕사의 전신이라 전해진다. 성덕사 창건이래 몇 번의 화재가 있은 후 1984년 누전으로 또다시 성덕사 법당이 소실되었으나, 1986년 일붕 서경보스님이 산의 정기가 너무 강하여 사찰이 부지 못하니 기를 줄이기 위하여 동굴을 파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의 주지 혜운스님의 동양 최대 동굴법당인 455㎡ 규모의 대웅전과 그에 버금가는 297㎡에 이르는 제2동굴법당 무량수전의 대불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범종각, 산신각, 나한전, 칠성각, 약사전, 조사전, 야외관음전, 일급수의 용왕단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일붕사(의령)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사찰이 규모가 있습니다

 

절벽이래의 바위동굴법당

 

기네스북에 오른 최대크기의 동굴법당이라고 합니다

 

되돌아본모습

 

물위에 지어진 사찰 서담암

 

봉황대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는 거대한 암산(巖山)으로,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벽계저수지 근처에 있다. 생김새가 봉황을 닮았다 하여 봉황대(鳳凰臺)라 부른다. 돌계단을 따라 봉황대에 오르면 암벽 사이로 자연동굴이 나오고, 이 동굴을 지나 석문(石門)이라 부르는 좁은 통로를 통과하면 또 하나의 동굴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사시사철 약수가 흐르는 약수터가 있다.
산 중턱에는 ‘봉황루’라고 부르는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인 누정(樓亭)이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봉황대의 볼거리 중 하나는 봉황대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는 대한불교일붕선교종 사찰 일붕사의 대웅전으로, 동양 최대의 동굴법당이라고 알려져 있다. 동굴법당의 규모는 넓이 456m², 높이 8m에 이른다고 한다. 봉황대 근처에는 벽계저수지와 야영장·방갈로·간이풀장·샤워장·주차장을 갖춘 벽계야영장이 있으며, 벽계저수지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벽계계곡(찰비계곡)이 나온다.

[네이버 지식백과] 봉황대 [鳳凰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수직바위기둥을 세워놓은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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